VSFORCE
VSFORCE 인터뷰 / 2022
이 인터뷰는 전시 <획 劃>을 준비하면서 ‘가연지소’에서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 안녕하세요 VSFORCE(박병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광주에는 그 동안 여러 번 오셨지만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VS 입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면서 작업활동을 전개했고 광주와는 한창 공공미술과 그래피티 작업을 할 무렵 광주비엔날레(2008)의 연계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방문했던 좋은 추억이 있습니다. 광주를 비롯한 타 도시에서의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필드에서 나름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다뤄왔습니다. 현재는 서울 작업실에 정착하여 몇 년 동안 먹 드로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 이번 전시에서 가장 최근작인 <스트로크 시리즈>를 선보이시죠. <스트로크 시리즈>가 획의 역동적 움직임이 낳는 기운과 활기가 있어서 직전의 <구도자 시리즈> 와의 차별점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번 작업은 어떤 면에 관심을 가지고 진행하셨나요?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가 나타난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먼저 제 작업 방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책이든 영화든 웰 메이드 시리즈물을 워낙 좋아합니다. 해당 감독이나 작가들의 깊은 세계관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는 매력 때문이지 싶어요. 이렇게 개인작업을 할 때도 성향적으로 연작을 하는 편이고 스스로 질릴 때까지 파고듭니다. 떠오르는 하나의 심상을 시작으로, 집중하는 시간만큼 양으로 드러나는 결과물을 완성하면 많은 작업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저절로 서사가 만들어지고 흐름이 잡힙니다. 즉 제 심상들이 어떤 서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영화 같기도 한데요, 시나리오와 촬영이 분리된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저는 시나리오와 촬영을 동시에 하는 느낌입니다. 촬영스케줄이 언제 끝이 날지를 모르는 느낌으로 드로잉이 지속됩니다. <구도자시리즈> 에서는 미지의 풍경, 우연의 풍경을 강조하며 그 속에 머무를 존재를 배치하는 것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수백장의 장면들이 그려지다 보면 내 마음속의 영화스텝들이 회의를 시작하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 이제 지금 시리즈는 마무리하고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자’ 고 결정이 납니다.
이번 <스트로크 시리즈> 같은 경우 언젠가 구도자를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없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면서 ‘존재가 그림에서 빠져나와 현실에서 관조한다’ 라는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면서 단지 풍경만을 그린 것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구도자라는 대행자가 이끄는 전지적 시점에서 그리는 이의 1인칭 시점으로 화면의 관점이 바뀌자 완전히 다른 심상이 펼쳐졌습니다. 고요하고 정지된 느낌의 구도자 시리즈는 존재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치열할 거라는 상상이었습니다. 종이 사이즈가 자동으로 커졌고 붓도 다양해졌습니다. 인공위성이 찍는 지구는 말그대로 고요하고 정지상 이겠지만 현실의 저는 활발히 움직이고 있을 테니 저(존재)의 온몸을 사용하는 흔적이 있는 시리즈가 시작된 것이라 보면 될 듯합니다.
3. 그래피티와 같은 스트릿 아트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셨더라고요. 제가 구도자 시리즈부 터 선생님 작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 점이 조금 놀라웠습니다. 선생님의 스트리트 아트는 방법론적으로 하위문화(subculture)를 적극 차용합니다. 하위문화라는 것이 실제로 주류문화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예컨대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의 경우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고 해도 가치를 추구하는 주류문화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의 경우 모든 작업에서 전통을 포함하는 주류문화에 대한 “저항”의 성격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대항문화(counterculture)적인 초기 작업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번 <스트로크 시리즈>를 이해하는데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트로크 시리즈>가 일면 서예나 수묵 추상의 성격이 보이기 때문에 제가 이번 선생님 작업을 해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초기 작업과 그 성격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구도자 시리즈의 묵시록적 세계관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요?
제 작업의 시작은 그래피티/스트릿 아트입니다. 그건 힙합문화를 대표하는 4대요소 중 하나로 시작된 움직임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유년기에 힙합문화에 빠져 있었고 이 문화가 세상에 대해 자유분방한 외침, 본인만의 확고한 메시지를 설파하는 것에 매료되었습니다. 사실 주류 프레임이란 대중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해진 틀안에서는 해야 할 것을 지켜야 좋은 결과가 예측이 되는 식이죠. 그런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하위문화가 발생하게 됩니다.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 결과를 신경 쓰지 않는 현재성, 틀을 깨부수는 과감성이 특징이고, 이로 인해 하위문화는 행동 등에 있어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형식을 띄게 됩니다. 대항 문화적인 특징은 여기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눈치를 안 본다는 것은 결국 자유에 다가서는 행동입니다. 하위문화적 성격은 제 작업에서 중요한 삶의 코드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도전을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런 접근 차제가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시너지효과를 낳기도 합니다. 완벽한 설계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의 실패를 예상하고 움직이다 보면 오히려 더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작업을 이어온 듯합니다. 물론 주류의 아카이빙도 철저히 합니다. 비주류는 언제나 주류를 잘 알고 있죠. 때문에 주류처럼 행동할 수 있기에, 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어차피 사회와 맞물린 지점이 있다면 정석적인 패턴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테스트를 할 수가 있습니다.
<구도자 시리즈>는 이전 작업인 <유토피아 시리즈> 를 언급해야 합니다. 또 유토피아 시리즈는 그 이전 작업인 <치트코드 시리즈> 세계관의 연결입니다. 치트코드 시리즈가 인간의 부풀린 욕망을 무대장치로 표현한 것이었고, 유토피아 시리즈가 그 욕망이 더 과해졌을때를 상상한 가상의 시나리오였습니다. 구도자 시리즈는 유토피아 시리즈를 리셋하는 세계관으로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서사입니다. 이처럼 구도자 시리즈의 어두운 분위기는 인간의 욕망과 그에 따른 유토피아에 대한 성찰과 절망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참고1
초기 그래피티 작업은 ‘틀을 깨부수자, 진짜 자신이 누구인가, 진정한 힘의 원천은 어디인가’ 에 대한 메시지 작업이었고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도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액을 잡는 부적이나 신의 존재를 심었습니다. 이후 작업이 치트코드 시리즈로 ‘잘못된 인간의 길’ 이라는 주제가 잡혔고 유토피아, 구도자, 스트로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참고2
저는 어릴때부터 쭉 무술을 했고 주로 타격기계통 무술(태권도, 가라데, 격투기)을 수련했습니다. 무술이란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생生의 측면이 있는 반면에 다른 인간을 제압하고 무력화시키는 사死의 측면이 동시에 나타납니다. 제 작업에는 처음부터 인간에 대한 고찰, 에고, 힘, 어둠과 죽음에 대한 심상이 중심이었고 이는 오래동안 무술을 익힌 시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재는 아이키도를 수련중입니다. 아이키도로 전향을 하면서 구도자시리즈가 만들어졌기에 아이키도가 제 작품에 있어 어떤 전환점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저는 선생님의 <구도자 시리즈>와 <스트로크 시리즈>에 심어져 있는 세계를 VSFORCE 시네 마틱 유니버스라고 부르는데요. 구도자의 모습은 분명 그래픽노블 영화의 대중적 세계관을 차용합니다. 또한 이러한 시나리오를 분명하게 염두에 두고 <스트로크 시리즈>도 제작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궁금한 점은 아이키도의 정신과 심신의 수련방식을 깊이 수용하여 이를 작업에 반영하지만, 반면에 대중문화를 차용하는 방식이 이 전통을 이탈하는 지점을 낳는데도 실제 작업에서는 아무런 충돌 없이 나타나는 지점입니다. 이러한 성격을 인지하고 계셨나요?
저는 차용 자체가 문화나 기법을 수용한다기 보다 적용시켜 내 것으로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만드는 작업의 결과물이 어떤 특정 문화나 화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아이키도 수련를 통해 얻고 있는 감각 중에 하나가 바로 ‘균형과 조화’ 라 할 수 있겠는데요, 굳이 튀는 행동이나 느낌표를 찍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것에서부터 자신만의 것이 드러나거든요. 결국은 나의 일상과 경험과 태도 그 자체가 작업이 되는 것이 ‘해야만 하는’ 과업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인터뷰에 성심껏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깊고 어두운 누아르 / 2018
by Kwon Soi
밝은 빛이 사그라들고 밤이 되면 달의 기운을 받아 그림을 그린다. 해와는 상극이다. 밤의 시간을 영위하며 완성한 작품들은 그 시간을 닮아 어둡고 무겁다. 한껏 치켜 올라간 눈썹에 빨간 눈을 한 복면의 남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무기들, 내리누르는 시커먼 하늘, 위태롭게 서 있는 검은 망토의 사람. 그렇게 폭력과 어둠, 잘못된 욕망을 담은 조금 불편하고 불안한 작업을 한다. 형식은 약간씩 달랐지만 한 번도 딴 길로 새지 않고 어릴 적부터 지금껏 죽 그렇게 VSFORCE란 이름으로.
작가는 실험적이어야지 상업화되면 안 된다 생각했다. 가난을 등에 업고 사는 한이 있어도 후회 없다. 실패작이라도 안 팔고 싶다며 상업화를 하대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상업성의 반대 지점에 놓인 아방가르드 한 그림을 그리는 데다 반사회적인 성격까지 띠니 그림으로 돈 벌 일은 애초에 없겠다 싶기도 했고. 그러다 한 이년 전 즈음부터 변화가 생겼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어릴 적 친구가 딜러가 되며 설득하기 시작했고, 수긍되는 부분이 있어 그 뜻에 따라 적게나마 판매의 맛을 봤다. 물론 작업으로만 먹고 살길은 여전히 소원해 보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생계수단으로서의 직업인 일러스트레이터, 포토그래퍼, 디자이너의 박병호와 예술가의 삶을 사는 VSFORCE가 시행착오 끝에 이젠 균형을 이루어, 원하는 바대로 최소한의 시간을 써서 딱 먹고 살 만큼 벌고, 그 대신 충분한 작업 시간을 확보하게 됐다. 또, 오랜 무도의 수련을 통해 몸은 물론 마음의 단련을 이뤄 누군가 봤으면 힘들었을 수도 있는 삶 속에서도 부동심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고. 게다가 오차 없이 완벽한 덕업 일치로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으니 꾸준히 아카이빙 하며 정진하는 것만 남았다. 어둡고 거칠어 때론 외면하고 싶을지라도 환하고 예쁘게 꾸민 억지 행복을 말하지 않는 진짜 나의 작업을.
Q 강렬한 작품과 이름 때문에 긴장하고 왔는데, 상상했던 것보다는 인상이 부드러워 보여 다행이다.
예전 격투기 했을 때 만났더라면 좀 달랐을 거다. 지금 수련하는 게 아이키도(Aikido)인데 이 무도의 철학이 ‘나를 베러 오는 적을 친구로 만든다.’ 이다. 보통의 무도는 대련할 때 서로 긴장하고 팽팽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건 그렇지가 않다. 힘 빼고 웃고 화내지 않고. 제압할 힘은 있지만 살살 달래가며 싸울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종 목적. 아이키도를 통해 무언가를 바로 맞닥뜨리지 않고 돌아가는 유연함을 익히는 중이다. 배려의 무도, 착한 무술이라 불리는데 그런 정신으로 수련을 하니 그게 인상에도 나타나는 것 같더라.
Q 작업할 때 쓰는 닉네임 VSFORCE도 무도를 통해 얻는 힘과 관계있는 건가?
직관적인 이미지 그대로 어떤 힘과의 대결 구도인 Versus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원뜻은 아니지만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화 그리며 썼던 이름인데 사회 시스템의 희생양으로 기계처럼 흘러가는 안타까운 인생들을 모두 똑같은 얼굴의 캐릭터로 그리고 Victim Spirit이라 이름 붙였다. VS(Victim Spirit)에 힘(Force)을 합쳐 VSFORCE(브이에스포스)가 된 거다. 간혹 개인이 아니라 디자인 크루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더라.
Q 고등학교 때부터 작가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나?
지금도 그렇지만 뭔가 해야지 하고 계획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운명론자라서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하게 되더라’를 믿는다. 내 앞에 있는 동기들을 좇아 그때그때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왔더니 어느새 작가가 되어있었다. 미술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그림 그리는 것이 낯설지 않은 환경이었고 그런 이유로 유치원 때부터 만화 그릴 만큼 놀이처럼 취미처럼 그림을 그렸고, 그런 계기로 대학도 자연스럽게 디자인 대를 들어가게 됐다. 군대 다녀와서 그래피티 하다 중퇴하긴 했지만...
Q 그래피티를 했었다고?
그래피티가 근래 들어 공공미술과 결합하며 반항하는 안티 소사이어티의 느낌이 줄고 현대 디자인의 한 소스처럼 되긴 했지만 처음 그래피티를 했을 때만 해도 불법 행위를 통해 어택(Attack)하는 느낌이 강했다. 힙합 좋아하고 거친 것 좋아하니 자연스레 스트리트 아트를 하게 됐고 운명처럼 들어간 전차부대에서의 군 시절을 통해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기법을 찾게 됐다. 가끔 전차에 도색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때 일련번호를 입히는 방법이 바로 스텐실이었던 것. 전역후 스텐실 기법으로 작업을 하다가 아티스트 뱅크시를 비롯해 여러 아티스트들을 알게되었고 점점 더 매력을 느껴 작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파내는 준비 작업은 오래 걸리지만, 현장에서는 짧은 시간에 그림을 완성하고 잡힐 염려 없이 도망칠 수 있으니 더 매력적이기도 했고, ‘저기다 어떻게 그렸지?’ 생각하게 되는 게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포인튼데, 감탄의 한마디 들으려고 위험한 구조물에도 올라가고 허를 찌르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남들이 못하는 걸 내가 했다는 카타르시스와 확 내질러버리는 통쾌함이 있었다.
Q 작업의 범위가 넓은 것 같다. 사진과 무대 연출도 한 거로 아는데…
다양해 보일 수 있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래피티는 작업한 바로 다음 날이라도 소멸할 수 있으니 기록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어 사진을 하게 됐다. 필요에 의해 하게 됐는데 많이 하다 보니 배우는 것들이 생기고 잘하게 되더라. 그러다 내가 원하는 게 결국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좀 더 큰 면을 나만의 것으로 채우고 싶은 마음이구나 싶어 무대 연출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하다 보니 한계가 느껴졌다. 무대를 만들 공간은 늘 주어지는 게 아니니 언제 작업할 수 있을지 예측도 힘들고, 오브제들을 트럭으로 나르는 것도 힘들어지고. 가뿐히 미술 가방 하나만 딸랑 들고 전시하고 싶어 드로잉을 하게 됐다. 예전엔 큰 작업만 해서 드로잉이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요샌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콘티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작업할 수 있어서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끝도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최근엔 설치미술을 한번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Black Spring'에 등장하는 구의 형태를 나만의 물질로 산을 뒤덮을 만큼 크게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Q 익숙지 않은 장르를 넘나들 때 걱정이나 떨림은 없나?
없다. 빨리 행동에 옮기고 빠져야 하는 그래피티 정신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그래서 고민하기보다 저지르고 본다. 행동력, 추진력, 결단력은 누구보다 높을 거다.
Q 당신의 세계관이 정립된 건 그럼 그래피티 작업할 때부턴가?
그땐 오로지 스타일뿐이었다. 작업을 발전시키고 싶고 깊이를 주고 싶어 다시 미술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때 나의 세계관이 정해지지 않았나 싶다. 전환점이기도 했고. 내가 원해서 한 공부라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교수님들 쫓아다니며 못살게 굴었었다. 운 좋게도 교수님들 모두 현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현대미술 작가분들이셔서 진짜 작업의 모습 그리고 내 것을 확립하는 기본을 닦도록 도와주셨다. 그런 과정을 거쳐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빼고 기본 뼈대만 남기니 무술과 밀리터리, 폭력이 남더라. 왜냐 물으시는데 설명을 못 하겠기에 그다음부터는 그 물음에 대한 방어 법을 세우는 데 즉 그 답을 찾는데 온 대학 시절을 다 보냈다.
Q 그런데 정말 왜 그런 거칠고 무서운 것들에 작업이 집중되는 건가?
나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다. 내가 폭력을 선망하나? 나에게 어두운 부분이 있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둡고 나쁜 것으로 자꾸 터부시하며 몰아가서 그렇지 폭력성 역시 인간이 가진 여러 본능 중 하나일 뿐이지 않나. 어떤 정신과 의사가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 있는데 태아가 뱃속에서 엄마 배를 발로 차는 것도 폭력성의 한 표출이라더라. 폭력적 문화를 접해서도 아니고 배워서도 아닌 자연스럽게 타고나는 원초적인 거로 생각한다. 난 이 어두운 부분에 더 매력을 느껴 때론 직접적으로 또 때론 판타지를 더해 작업하는 거고. 그리고 밀리터리 덕후, 무도 덕후로의 내 모습은 가정의 영향이 크다. 경험이 작업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내가 가진 취향과 환경이 모두 서브컬처(Subculture) 적이니 그 모습이 고스란히 작업에 드러나게 되는 거고.
Q 가정의 영향이 무얼 말하는지…
아버지가 형사셨다. 언젠가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집에 들러 식사를 하셨는데 더워서 그랬는지 외투를 벗고 계셨다. 셔츠에 권총이 담긴 홀스터를 차고 계시는데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거친 남자의 세계에 빠져버린 계기가 아닐까 싶다. 남자애들은 장난감 총, 칼만 봐도 좋아하는데 어린 나이에 나는 진짜를 가까이서 봤으니 그 강렬함이 어땠겠나. 비비건 갖고 서바이벌하며 놀고, 5학년인지 6학년 때부터는 돈 모아 플래툰 잡지 사고, 참고서 살 돈으로 무도, 무술 관련 책을 사 모으고 강한 무기와 도구, 몸을 단련하는 것에 심취해 지냈다. 지금도 작업을 위해 동시에 나의 취미 생활을 위해 밀리터리 아이템을 컬렉션 해 고이 모셔두고 있다. 누가 형사 아니랄까 아버지가 처음 보여줬던 영화도 로보캅이었을 정도니 내 취향에 있어 가정의 영향은 어마어마할 거다.
Q 그 모든 것이 녹아든 당신의 작품 이야기를 해달라.
치트 코드(Cheat Code) 시리즈, 그 다음 유토피아(Utopia) 그리고 블랙 스프링(Black Spring)으로 이어진다. 그때그때 영향을 주는 것 중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며 유연히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달라지는 생각에 휘어지기도 하지만 방향은 잘 가고 있는 것 같다.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건 인간에 대한 이야기. 치트 코드 때는 힘의 크기와 그걸 다루는 사람의 문제였고 유토피아 때는 힘을 가진 인간이 욕망으로 붕괴하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반어적인 제목에 담았고 최근작, 블랙 스프링은 능력을 가늠할 수 없는 둥그런 모양의 구(球)가 새로운 심판자로 등장한다. 크게 보면 처음에 공격과 방어를 하던 단체가 점점 없어지다 끝내 소멸하고 원형의 존재 B가 나타난 것. 그 구가 어떤 물질인지 어떤 힘이 있는지 아직은 나도 모른다. 시리즈를 이어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조금 바뀐 건 그림의 스타일이다. 강렬했던 붉은 기가 줄어들고 단순화되고 추상화되고 있다. 어떤 이는 그걸 보고 예전보다 평화롭다 느낄 수 있겠지만 커다란 태풍이 몰려오기 전, 고요 상태의 불안정한 느낌이라 보면 될 것 같다.
Q 드로잉 작업할 때 어떤 재료를 사용하나?
먹을 사용한다. 동양적인 색채를 좋아하기도 하고, 다루기도 쉽고 가성비도 좋아서. 500mL에 이천 원. 그거면 100장 이상 그릴 수 있으니 재료비 걱정 없이 작업할 수 있다. 시간이 다 드러나는 재료라, 머뭇거리거나 살짝 수정하면 그대로 티가 나서 한 번에 빠르게 작업해야 하는데 그런 현재의 순간성이 재밌다. 그래피티 하며 빠름을 추구했던 내 성격에도 잘 맞고. 어려운 건 마지막 20초. 동양화엔 하지 않는 바니시 처리를 꼭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뭉개지거나 다 밀려서 작업을 망치기 일쑤. 하지만 제대로 완성되면 먹그림이지만 동양화는 아닌, 독특한 유화 같기도 한 나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
Q 작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
천재가 아니고선 아카이빙 없이 작품이 나온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소한 생각이라도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서 남겨두려 하는 편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들, 사소한 이미지 같은 것도 기록하고. 전시했던 것, 작업했던 것도 차곡차곡 잘 모아두고. 그림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수련하고 아카이빙 하는 내 라이프 자체가 모두 작업이라 생각한다.
ELOQUENCE MAGAZINE / 2012
by Sung-mi Yu
From street art to stage directing, VS is actively expanding his creative reach. He works exclusively under a single theme: namely, human beings. He hopes we can all realize something by looking carefully at the darkness within us and expressing it.
Q. What is the range of your work?
Currently, the format of my work fits best on the stage. I started working as a street artist and after going through a transition period, I’m working in the sphere of stage direction now. Regardless of format, my work remains strongly based on the visual. Instead of focusing only on formative arts, however, I create everything that can go into a given scene I have imagined. In the end, the final result of my work is not the stage direction or performances but my photos.
Q. It seems ironic to hear that your final work is photos.
I always have to record my results. This is why records are part of my works.
Q. Why is it so important to you to document your work?
You never know when street art will be gone. I always worked really hard to create my street art pieces, but they just disappear one day. This is why I have to record them. Even the stage will be destroyed in the end. This is how I earnestly began taking pictures.
Q. How did you get started doing street art?
I guess every street artist starts doing it for similar reasons; for me, hip-hop culture was my biggest influence. You see, graffiti is one of the four elements of hip-hop (in addition to MC, B-boy and DJ). Since I was enjoying it, I was naturally affected by it. But I didn’t like the drawings of most graffiti artists who stylize letters with spray; they didn’t seem to have anything unique to say. So I used stencil techniques.
Q. Stencil techniques?
I used to paint in the tank forces for two years, while I did my mandatory military service. We carved letters into paper and sprayed over them to make the lettering neat and easy to copy. Those two years of practice naturally led me to use the technique for street art, too. There were already a few people doing stencil work while standing like Banksy. The good thing about working with stencils is that you can run away after just a few seconds. Isn’t that cool?
Q. So what led you from stencil painting to stage directing?
I thought it was quite interesting to draw and then take pictures of my work. This led me to begin searching for good spots for photography, not just for drawing pictures—street artists usually only focus on finding sequestered places and quiet times to draw pictures. On the other hand, I drew scenes in my head first and then produced them. Eventually, I realized that what I really wanted was to create my own stage, not just make street art.
Q. What does VS mean?
I used to draw illustrations and cartoons. The name of the character I drew at the time was Victim Spirit. To explain briefly, the Victim Spirit works were about a controlled society where, for example, everyone dresses the same. One day, VS wakes up to his reality. In these works, VS represents the spirits of victims of our society—it’s not really that difficult to figure out. Later, though, people assigned new meanings to ‘VS;’ for example, many people thought it meant ‘versus’ and implied confrontation, since the images were so strong. Personally, I like the different interpretations.
Q. All your works emphasize the visual. What influenced you in this direction?
Art always represents one’s personal tastes and environment. My father was a detective, and I have been influenced by the military and the police since I was a child—times when I also came in contact with martial arts and weapons. I liked the strong visual images and I thought they looked cool. It goes back to the old stereotype that girls buy dolls and boys buy robots and guns. [laughs] I linked this taste with my work in order to express the human predilection for violence, darkness and anger. The theme of my work is always human beings. I think everyone raises a little devil inside, and I try to express these emotions symbolically and create a fantasy.
Q. How did the project CHEAT CODE (2011) come about?
People who start playing a game for the first time will get shot and die quickly, but you won’t die if you use the cheat code. It’s like a trick command. I think people have their own cheat codes in real life. We cannot criticize them, since this is related to their survival, but sometimes people misuse their cheat codes inhumanely. In order to wake people up to this reality, I make things more scary and violent. I don’t like to deliver messages and interpretations directly; I prefer to convey an atmosphere instead.
Q. What are your future plans?
I’m preparing for my next project. Personally, I don’t always have the space to create a stage and I’m always subject to my working environment. It’s hard to predict when I can get a stage or even what type of stage it might be. But I always approach my work with a consistent theme. I will keep working hard to be an artist.
Q. What kind of effort are you talking about specifically?
I’d like my art to become a habit. I want to become an artist who works regularly. I guess being an artist means making your work part of your daily life.
Q. 당신이 하는 작업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최근 작업의 포맷은 무대작업이다. 출발은 스트리트 아트였고, 과도기를 거쳐 지금의 무대연출에까지 이르렀다. 중요한 건 비주얼이 주가 되는 작업을 한다는 거다. 단, 조형물의단일작품이아닌,만들고싶은장면을떠올리고그장면안에들어가는모든 걸만든다.그런데 결국 내 작업의 최종 결과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무대연출이나 퍼포먼스가 아닌 사진이다.
Q. 사진이라니 조금 의외다.
결과물은 항상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 또한 내 작업의 일부다.
Q. 기록에 의미를 두는 이유가 있나?
스트리트 아트 작업은 언제 사라질지 알 수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열심히 그렸는데, 어느날 그냥 없어지는거다. 그래서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안된다.게다가 무대도 결국은 부서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Q. 스트리트 아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스트리트 아트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의 계기는 아마 다 비슷할 거다. 힙합 문화의 영향이 가장 크다. 그래피티가 힙합의 4대 요소 중 하나이지 않나. (MC, B-boy, DJ, Graffiti) 그걸 즐기는 입장에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다. 다만, 그래피티 작업자 대부분이 스프레이로 글자에 스타일을 입히는 그림을 그린다면, 나는 그게 싫었다. 경쟁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스텐실 기술을 썼다.
Q. 스텐실?
전차부대에서 2년 동안 도색을 했다. 군인들은 깔끔한 레터링과 복제를 위해서 글자를 종이에 파서 스프레이로 뿌린다. 2년 동안 그 기술이 손에 배니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 뱅크시(Banksy)처럼 스텐실 기술을 서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이미 몇 있긴 했다. 스텐실의 장점이라면, 미리 파 놓은 종이를 준비해서 몇 초만에 뿌리고 바로 도망갈 수 있다는 거다. 매력적이지 않나?
Q. 어떻게 무대 연출로까지 작업이 이어진 건가?
‘그림을 그리고,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단순히 그리기위한 장소를 찾는 것이아니라,사진이잘나올만한곳을찾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일반적으로 스트리트 작업은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대와 장소를 찾아 그림을 그린다. 반면 나는 머릿속에 장면을 먼저 그려놓고 연출을 했다. 결국 스트리트 속성의 작업이아닌, 내 무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걸 깨닫게 됐다.
Q. VS의 의미는 무엇인가?
원래는 일러스트와 만화를 그렸다. 당시에 그리던 캐릭터의 이름이 Victim Spirit 이다. 조금 설명하자면 일괄된 사회 시스템 속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행동하다가 어느 날 각성하는 내용이었다.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자들의 영혼을 대변하는 캐릭터랄까.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분들이‘VS’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해주더라.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대결구도로 의미를 부여하고, ‘versus’ 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게 마음에 든다.
Q. 비주얼이 굉장히 강렬하다. 특별히 영향 받은 것이 있나?
작업은 개인이 가진 취향이나 환경을 모두 대변한다. 아버지가 형사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군경의 영향을 받았고, 무술이나 총기같은걸 자연스럽게 볼 수있었다.그 런 강한 비주얼 이미지가 멋있고 좋았다. 어릴 때 여자들은 인형을 사고, 남자들은 로봇이나 총을 사는 것과 같은 심리다. (웃음) 이런 취향을 작업과 연결하면서 인간의 폭력성이나 어둠, 원망 같은 걸 표현하게 되었다. 내 작업의 주제는 항상 ‘인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작은 악마를 하나씩 키운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이 가진 이러한 감정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판타지를 꾸며내기도 한다.
Q. 연작 프로젝트 ‘치트코드’(CHEAT CODE)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게임을 처음하는 사람들은 빨리 총에 맞아서 죽는데, 치트코드를 쓰면 안죽는다. 치트 코드는 일종의 속임수나 마찬가지인 명령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도 각자의 치트 코드가 다 있다고 생각한다. 생존과 연결되는 거니까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인간성을 벗어 날만큼 쓰게 되는 일도 있는데 각성하자는 차원의 의미를 더 무섭고 폭력적으로 돌려놓은 거다. 직접설명하고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작업은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분위기만 전달하고 싶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같은 경우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그때 그때의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언제쯤 어떤 무대가 주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든 편이다. 다만 항상 일관성 있는 주제로 접근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Q.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말하는 건가?
작업의 습관화랄까. 항상 습관처럼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작업이 생활이 되는 것이 곧 아티스트가 아닐까?